2018. 11. 16. 09:54ㆍ마음의언어
세계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세계화는 한 개체가 소속된 단위가 한 국가를 초월한 것을 말한다.
세계화는 무역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무역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세계화는 무역의 단위가 국가 단위에서 전세계로 뻗은 것이다.
무역은 산업혁명,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고대에서부터 존재했지만, 우리는 20세기 넘어서부터 ‘세계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이전에는 무역 참여국들이 특정 지역에 제한적이었고 지금처럼 국제 무역을 촉진시키는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이다.(ex FTA, EU 등)
그럼 지금부터 무역이 현재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알아보자.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3천년부터 원자재를 수입했고
바빌로니아와 인도도 기원전 800년경부터 무역을 했으며
기원전 5세기경에는 고대 이집트가 중개무역항으로서 동서무역로를 개척했고
중국 한왕조때는 히말라야와 아시아 남서부 대초원 지역의 무역로를 개척했다.
하지만 이때는 지리적장애와 운송로의 불확실성, 해상육상기술의 한계로 목숨을 건 교역이었으며 품목도 주로 사치품이었다.
따라서 무역으로 인한 계층적 불평등도 없었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유럽의 아시아 진출 이후 부상한 제국주의 질서에 영향을 받아 저개발국에서는 농업생산품같은 1차산품, 선진국은 이를 수입하여 가공한 공업생산품을 수출하는 이른바 "무역의 계층화"가 등장했다.
산업혁명은 세계무역 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매튜볼턴 덕에 상용화에 성공하여 증기기관 덕분에, 전세계는 영국을 필두로 생산구조 자체가 바뀌고 교통, 통신, 운송기술이 발달했다. 특히 인간보다 강한 힘으로 대량생산을 가능케 함으로써 값싼 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팔기 위해 영국은 식민지를 건설했고 원재료 또한 쉽게 구해왔다. 이전과의 큰 차이가 있다면, 취급품이 주로 사치품이었던 과거와 달리 면제품 같은 일상품도 가내에서 만들어 사용하기보다 공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세계적 지위는 날로 격상되었고, 19세기 중반에는 1776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을 사상적 근거로 시장에서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는 자유무역 시대를 열었다. 이는 법과 제도에도 변화를 일으켜, 농작법과 항해법 역시 폐지되었다. 이때 수입산 곡물에 대한 관세가 폐지되면서, 일반 노동자들은 줄어든 식비 덕에 다른 곳에 지출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상대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노동자들에게 값싼 임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때 등장한 신흥 산업자본가들의 힘이 세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혁명은 단순히 ‘대량생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자유무역까지 도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고, 전세계 (고전적)금본위제라는 국제통일 결제체계를 가져온다.
고전적 금본위제란 화폐의 기본 가치 기준을 금으로 하는 것으로, 그 이후의 금본위제(브레튼우즈 체제 下 $의 기축통화化)와 구분하여 칭하는 것이다.
당시 많은 국가들은 은본위제를 택하였는데, 무역량이 증가함에 따라 단위가치가 더 높은 화폐가 유통되어야 했고, 자유무역을 주도하고 있던 영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함에 따라 1870년대에 고전적 금본위제가 시대가 열렸다.
금본위제라고 하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금 자체를 ‘금화’ 등의 형태로 직접 화폐로 유통시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지폐 등을 금의 일정 가치와 연동시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이미 산업화와 무역은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1870년대에 고전적 금본위제가 도입되면서 더 폭발하였고, 증기력을 철도와 해운에 이용하여 국제운송 발전도 이끌었고, 또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여 광범위한 무역질서가 창조되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공업지 영국의 최대 산업은 면방직이었는데, 면화를 인근에서 수입하다가 아메리카까지도 가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주로 사치품만 무역했던 이전과 달리 기초상품(일상용품)의 대량거래가 증가하였고, 20세기 초에는 광범위한 국제무역체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대륙간 무역은 제국주의 질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식민지 건설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인도의 무역수준은 높았던 것에 비해 열강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우리나라 등은 매우 낮았고, 이러한 무역수준의 큰 편차와 지리적 한계는 아직 무역을 지구적 시장으로 보기에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직 제도화된 국제무역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열강들의 식민지를 통한 수익창출 야욕은 끊이지 않았고 1차대전 발발로 각국은 전쟁으로 대부분의 자금을 써야하고 전쟁의 승패가 당장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무역은 사실상 중단되었다.(군수품 제외) 1919년 1차대전이 종료되고 각국은 전쟁피해복구를 위해 보호무역을 채택했다.
전쟁지가 유럽이라 피해를 받지 않던 미국은 유럽에 자본과 물자를 공급하며 부를 축적해나갔고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29년 경제 거품이 꺼지는 대공황이 발생하여 유럽까지 강타했다. 이때 케인즈 등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수정자본주의가 출현했다.
지금까지 요약)
고대 원거리무역(국민국가의 개념 확립 이전이므로, 국제무역이라고는 안함,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그리스 등 중개항도시를 중점으로 사람 다리 혹은 일반 항해로 상품교환) -> 산업혁명(증기력 운송발달&대량생산) -> 넘쳐나는 값싼 상품을 팔기위해 제국주의 질서에 따라 식민지를 건설하고 대량수출 및 쉬운 원자재 확보하는 영국 -> 무역량 급증에 따라 단위가치가 더 높은 화폐의 필요성 대두 & 자유무역을 선도하는 영국에 의해 고전적 금본위제 실시 -> 이미 발전한 무역을 더 폭발시킴 -> 열강들의 식민지 야욕 -> 1차세계대전 -> 전쟁피해 복구에 따른 세계무역 네트워크 종료, 보호무역주의 시작 -> 전쟁에 물자와 자금조달로 평화롭게 야욕을 채워가던 미국의 증시 폭락 -> 유럽과 전세계까지 강타 -> 장기 불황으로 케인즈 등 정부개입 강조(고전적 금본위제에 기초한 자유무역 옹호자들의 질타를 받음, 마르크스와 같은 공산주의자 취급받음) -> 독일은 전쟁배상금에 대공황까지 겹침 -> 전체주의 출현 -> 2차대전 발발
2차대전이 끝나갈 즈음 1944년 7월, 전쟁 후 다시 이전의 금본위제 시대처럼 국제금융체제를 갖춘 자유무역을 다시 일으킬 필요성이 제기되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튼우즈에서 44개국의 연합국 대표들이 모였다.
35달러 = 금 1온스
&
국제결제화폐(기축통화)를 달러로 고정
브레튼우즈 협정에서 다자간 무역질서의 기초를 확립하고 1947년 드디어 다자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체결되었다. 이는 협정이기 때문에 기구보다는 약하지만 전세계 관세인하협상의 준거틀을 제공하고 자유무역을 촉진했다는 데 아주 중요한 의의가 있다. 또한 48년간 7차례의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초기 유럽 등 강대국 중심에서 개도국까지 참여국은 계속 증가하였다.
1967~1970년 케네디 라운드에서 80여개국이 참가하게 되었고(한국 포함), 1973~1979년 도쿄라운드에서 OECD국가 간(경제가 어느정도 발전하여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 관세율이 고전적 금본위제 시대보다 낮아졌다. 이후 1986~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전세계 대다수 국가들이 참여하게 되고 관세율은 지난 수세기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우루과이 라운드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끝으로 WTO가 출범하게 된다.
그러나 이 WTO가 다자간 협상이고 회원국이 엄청많기 때문에 한번 라운드열어서 협상하려고 하면 수년 걸리는 것은 당연하고 이마저도 타결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훨씬 더 진전된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양자간 자유무역 협정인 FTA와 특정 회원국끼리 차별을 둔 경제블록이 생겨났다.
따라서 전세계는 더 자유로운 무역을 하게 되었고, 이전에 일어난 무역의 계층화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1 같은 산업 내 무역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종류의 국제적 분업(한쪽은 벤츠고급품수출 다른 한쪽은 모닝값싼것 수출)이 등장하고 차별화된 상품에 대한 수요(같은 폰이라도 누구는 아이폰 누구는 갤럭시)가 증가하게 되었다.
2 완제품 교역 뿐 아니라 반제품이나 부품 교역도 증가하게 되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하청업체 간 교역 발달, 완성차업체는 따로 존재)
교역비용(운송비용+통신비용)이 높아 공장들이 지리적으로 인접해야 했던 예전과 달리(또는 한 국가에 밀집했던 생산공정), 이제는 오히려 인건비가 싼 해외에서 반제품이나 부품들을 수입해오는게 기술발달로 교역비용이 낮아지면서 더 경제적인 교역이 가능해짐.
따라서 생산공정이 한나라가 아닌 전세계적으로 분산배치되게 됨(부품해외수입)
그리고 기술변화와 생산의 지구적조직화, 저렴한 무역비용으로 생산공정의 개별부분을 특화시키게 됨(아이폰 반도체는 한국 인공지능은 독일 조립은 중국)
또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무역을 증가시키고 국제분업을 새롭게 변화시키게 되었다.(선진국은 연구개발, 개도국은 제조)
따라서 우리는 무역으로써 이러한 형태의 세계화를 이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GATT와 WTO의 차이
1 GATT는 협정이고 WTO는 기구이다. 규제의 무게와 범위가 다르다.
2 WTO는 준사법적권한을 가져, 무역규칙이 분쟁대상이 되거나 회원국이 무역규칙을 위반했을 경우 분쟁조정심의위원회를 통해 해당국가에 어떤 상품에 대해 수출금지를 내릴 수 있는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정부보다 권력이 세다)
3 GATT는 관세위주로 다루었다면 WTO는 관세와 모든 비관세장벽 그리고 무역환경의 차이점을 없애고자 했다.
4 GATT는 유형 재화위주였다면 WTO는 서비스와 지적재산권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했다.
*관세장벽&비관세장벽
일반적으로 자국 정부는 다른 나라 관세는 높길 바라면서, 자국 관세는 낮길 바란다. 하지만 GATT체제 하에서 세계 무역은 관세를 서로 낮추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관세 말고도 다른 장치로 자국산업을 보호하기도 한다. 그것이 비관세장벽이다. (관세는 보호무역의 대표적인 장치이다.) 비관세장벽은 무역의 양, 내용,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조치 일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무역에 대해 직접적으로 통제하거나 영향을 주는지에 따라 직접적 장벽과 간접적 장벽으로 나뉜다.
직접적 장벽에는 수입쿼터제, 수입량 제한, 수출지원, 통관지연, 통관규제, 정부의 국내생산품 구매정책 등이 있다.
간접적 장벽에는 정부의 국내 산업지원, 보건, 안전, 환경문제를 근거로 하는 상품규제 등이 있다.
출처)
<전지구적 변환> 데이비드 헬드, 앤터니 맥그루, 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조너선 페라턴 (지은이), 조효제 (옮긴이) | 창비 | 2002-12-02 | 원제 Global Transform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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