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荀子)의 성악(性惡)

2018. 11. 18. 12:08마음의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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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 / 순자

 

 

순자는 전국시기 말, 각 제후국들이 서로 천자가 되겠다고 격렬히 싸우던 때에 활동한 사상가 및 교육가입니다.

 

이전의 공자나 맹자는 인간에게 내재한 천부적인 본성을 '修身'을 통해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본성; 인, 의, 예, 지 - 하늘이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선하고 좋은 것들임 // 이들에 反하는 것들을 마주하면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義'를 통해 그 선한 본성을 지켜내야 함)

 

이에 반해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욕심에 가득 차있어서, 이를 禮(작위적인 것; 사회 법 또는 질서)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맹자가 이야기한 선한 본성은 본래 '악'에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세력싸움으로 더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았던 순자는 맹자보다 더 예의와 법도가 필요했던 시기로 僞(사법지화, 예의지도)를 강조했기 때문에,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순자도 역시 하늘을 범접할 수 없는 대상으로 존중했습니다. 성性을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 보았는데, 이 성이 욕정情(=원초적 욕구, 기질적인 욕망, 후천적인 감정 ex.희로애락, 식욕, xx욕,..)을 가져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정에 충실한 것을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악한 것을 작위적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질서(예의)로 다스려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 당시 봉건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 공자와 마찬가지)

 

순자 시기에는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사법지화와 예의지도를 제창하였는데, 지금도 가능할까요?

우선 현대는 봉건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이 여러 사건에 청원도 넣고 탄핵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판의 여론이 힘을 얻으면서 자본주의라는 구조상 생겨나는 계층갈등을 자각하고 이에 맞서려고 합니다.

 

계층 뿐 아니라 세상 어느 것도 대립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자본가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급여를 제공하여 고용하려 하고, 기성세대는 현세대보다 기술발달이 가둔 시간속에 매여 살지 않았고, 선배는 항상 후배가 거만해보이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윗사람이 자신에게 훈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내 앞에 있는 것을 옹졸하게 보는 게 아니라, 남을 진실로 대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문제를 곱씹어 보는 습관이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 같습니다.

 

人之性恶,其善者伪也。

사람의 본성은 악하고, 그 선한 것은 작위이다. 

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顺是,故争夺生而辞让亡焉;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발생하고 사양은 사라진다. 

生而有疾恶焉,顺是,故残贼生而忠信亡焉;

나면서부터 시기와 미워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해치는 것이 발생하고 충성과 믿음이 사라진다.

生而有耳目之欲,有好声色焉,顺是,故淫乱生而礼义文理亡焉。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서 궁중음악소리와 미색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음란함이 생기고 예의와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도리가 사라진다.

然则从人之性,顺人之情,必出于争夺,合于犯分乱理,而归于暴。

그런즉 사람의 본성을 좇고 사람의 정욕을 따른다면, 반드시 쟁탈함에서 시작하여 신분을 어그러뜨리고 규범을 어지럽히게 되며, 포악함으로 돌아갈 것이다.

故必将有师法之化,礼义之道,然后出于辞让,合于文理,而归于治。

따라서 반드시 장차 스승의 가르침에 의한 교화와 예의의 인도함이 있어야 하고, 그런 후에 사양함이 드러나게 되고, 사물의 이치에 합하게 되어 잘 다스려지는 형태에 돌아가게 된다. 

用此观之,人之性恶明矣,其善者伪也。

이 예시들로써 사람의 본성을 보면,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 선한 것은 작위이니라. 

 

(略)

孟子曰:“今之学者,其性善。”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배우는 것은 그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다

曰:“是不然!是不及知人之性,而不察乎人之性伪之分者也。

 순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을 아는 데 미치지 못한 것이고, 사람의 본성과 작위의 구별에 대해서 살피지 못한 것이다.

凡性者,天之就也,不可学,不可事。礼义者,圣人之所生也,人之所学而能,所事而成者也。

 무릇 본성이라는 것은 하늘이 부여한 것이어서, 배울 수 없고, 노력할 수 없다. 예의라는 것은 성인이 만들어낸 것이어서, 사람이 배워서 능할 수 있고, 노력으로써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不可学,不可事,而在人者,谓之性;可学而能,可事而成之在人者,谓之伪。是性伪之分也。

배울수 없고 노력할 수 없는데 사람에게 있는 것, 이것을 본성이라 하고, 배워서 능하게 되고,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그것이 사람에게 있는 것, 이것을 작위라 한다. 이것이 본성과 작위의 구별이다. 


(略)

孟子曰:“今人之性善,将皆失丧其性故也。”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은 선한데, 장차 모두 그 본성을 잃어서 그러한 것이다. 

曰:“若是则过矣。今人之性,生而离其朴,离其资,必失而丧之。用此观之,然则人之性恶明矣。

순자가 말하기를 그와 같다면 잘못된 것이다.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본질과 바탕을 떠나게 된다는 것인가? 이것으로써 본성을 보면, 그런즉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은 분명하다. 

孟子曰:“人之性善。”

 맹자가 말하기를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曰:“是不然。凡古今天下之所谓善者,正理平治也;所谓恶者,偏险悖乱也:是善恶之分也矣。

 순자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무릇 예나 지금이나 천하가 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르고 이치에 맞고 태평하고 잘 다스려진 것이고,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편협되고 위험하며 질서에 거스르고 어지러운 것이다. 이것이 선과 악의 구별이니라.

今诚以人之性固正理平治邪,则有恶用圣王,恶用礼义哉?虽有圣王礼义,将曷加于正理平治也哉?"

 

(略) 

 진실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확실히 바르고 이치에 맞고 태평하고 잘 다스릴 수 있다면, 즉 어찌 성왕이 필요하며 어찌 예의가 필요한가? 비록 성왕과 예의가 있다한들, 장차 어떻게 바르고 이치에 맞고 태평하고 잘 다스려진 것 위에 더 더할 것이 있겠는가?

今孟子曰:“人之性善。”无辨合符验,坐而言之,起而不可设,张而不可施行,岂不过甚矣哉!

 맹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은 변론에 합한 근거가 없으며, 앉아서 그것을 말할 수 있을지언정 일어서서 세울 수 없고, 입벌려 떠들지언정 실행할 수 없는데, 어찌 지나치다고 하지 않겠는가!

故性善则去圣王,息礼义矣。性恶则与圣王,贵礼义矣。 

 

그러므로 본성이 선하면 성왕을 떠나고 예의가 쉬게 되는 것이다. 본성이 악하면 성왕과 더불며 예의가 귀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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